
들어가기전에
이 글은 허그프리에 대해 별로 좋지 않은 이야기만을 하는 글임을 먼저 밝혀둡니다. 재밌게보신 분, 감동하신 분은 괜히 이런 글 읽으며 기분 나빠하지 마시고 그냥 뒤로가기를 누르시는걸 추천합니다. 사람마다 어떤 작품을 보는 평가의 기준과 감상은 다를 수 밖에 없는데 적어도 저에게 허그프리는 결코 칭찬을 할 수 없는 작품이었습니다. 반론을 하셔도 아마 서로 납득하지 못하고 감정싸움으로 번지기만 할 것으로 생각됩니다. 누군가에겐 좋은 작품도 누군가에겐 그렇지 않을 수 있습니다. 그냥 이런식으로 보는 사람도 있구나 정도의 감상으로 이해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사실 이 글도 쓸까 말까 많이 망설였습니다. 보통 작품을 칭찬하는 감상은 서로 좋게 좋게 이해하기 때문에 문제가 발생하는 일이 드물지만, 안좋게 평가하는 감상은 아무래도 재밌게본 사람들의 반발을 사기 때문에 잡음이 일어날 가능성이 높지요. 그런걸 알고는 있지만, 그렇다고 남의 시선이 무서워 솔직한 감상을 이야기하지도 못하는 것도 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제가 허그프리를 보며 느낀 분노를 어디다 마땅히 풀곳도 없고 해서 이렇게 감상으로나마 해소를 해야 분이 좀 풀릴 것 같아요.
서론이 길었습니다.
지난 일년간을 달려온 허그프리. 비단 프리큐어 시리즈뿐만 아니라 어떤 작품을 좋아하며 찾아보는 팬들은 전부 개개인마다 그 작품에서 뭔가 기대하는 것이 있기 때문일거라 생각합니다. 기대하는게 없는 작품은 관심도 없겠지요. 제가 개인적으로 프리큐어 시리즈를 좋아하고, 매년 챙겨보는 이유는, 무엇보다 이 시리즈가 '여아들을 위한 작품'이라는 점 때문입니다.
제작진도 '프리큐어를 어른들을 위해서 만들면 여아들도 자기들을 위한게 아니라는걸 알게되고, 어른들마저 안보게 된다.'는 인터뷰를 한 적이 있을 정도로, '여아들을 위한 작품'이라는 점을 중요하게 강조하고 있으며, 저 역시 그런 점이 이 시리즈의 최대 매력이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다른분들은 왜 프리큐어를 보는지 모르겠지만, 적어도 저는 그렇습니다. 그래서 키라프리 감상 때도 말했지만, 여아들을 위한 시도라면 까짓꺼 육탄전을 빼더라도 상관없다고 생각했습니다. '곤경에 처한 사람들을 구해주고 세상을 지켜주는 여자아이들의 이야기'라는 큰 틀만 유지한다면, 그 안에서 육탄전을 빼든 말든 크고 작은 변화는 아무래도 상관없었습니다.
허그프리도 초반에는 그런 시리즈의 분위기를 잘 계승해서 아주 재밌는 작품으로 전개가 되었습니다. 그런데 진행되는 작품 중간중간에 아무래도 마음에 걸리는 부분들이 있더군요. 가장 먼저 맘에 안들었던 부분은 초대가 등장하는 편이었습니다. 독립된 작품에서 굳이 초대가 등장해야하는 이유는 없거든요. 초대가 등장한건 어디까지나 작품 내적으로 필요해서가 아니라, 작품 외적인 문제였지요. 15주년 기념작이라는 타이틀로 가을 극장판을 올스타즈로 기획하면서 그에 대한 홍보와 캐릭터 소개차 초대를 넣은거니까요.
저 개인적으로는 이 부분이 상당히 마음에 안들었습니다. 딱히 초대를 싫어해서가 아니라, 작품 외적인 이유로 작품 내용이 왔다 갔다 한다는 상황 자체를 안 좋아하기 때문입니다. 올스타즈 기획 같은건 그냥 그런 목적으로 만드는 극장판이나 이벤트만으로 충분하다고 생각하고, 굳이 독립된 작품의 스토리와 설정을 무시해가며 억지로 전작의 캐릭터들을 등장시킬 필요까진 없다고 생각하거든요. 작품 내적으로 전작의 캐릭터들이 등장할 개연성을 미리 확보해 놓았다면 또 이야기가 다르지만, 허그프리는 전혀 그렇지 않았습니다. 아기가 하규~하니까 그냥 하늘에서 뚝 떨어졌거든요. 이런 어거지 등장이 상당히 맘에 안들었습니다. 그래도 일회성 기획이니까 뭐 넘어가자. 하고 넘겼는데, 왠걸, 극장판 개봉시기가 다가오니까 아예 전 시리즈를 등장시켜 버리더군요.
뭐 이쯤되니 태클거는게 바보 같이 생각 되더군요. 그래 이왕 홍보할꺼 확실하게 해라~ 이런 심정으로 전작 캐릭터들이 등장하는 에피소드는 그냥 본편에서 없는 취급을 하는 수 밖에요. 꼭 필요해서 등장한 것도 아닌 전작 캐릭터들을 세계관에서 납득이 가게끔 녹여낼 수도 없는 노릇이고, 오랜만에 얼굴보니 반갑고, 이왕 얼굴 도장 찍은거 영화가 히트했으면 좋겠네~ 뭐 이런 심정요.
작품 내적으로 보면, 겨우 간부 하나인 트라움을 상대할 때는 전작 프리큐어들이 전부 나서서 힘을 빌려주더니, 그보다 더 위험한 최종결전 때는 쌩깐게 되잖습니까. 말이 안되잖아요. 물론 그때는 트라움의 발명품 때문에 시공이 어쩌고~ 뭐 이유를 붙이려면 얼마든지 붙일 순 있겠지만, 그 트라움이 아군화한 최종 결전때 그 발명품 또 쓰면 안된다는 법도 없잖아요. 이렇듯 전작 캐릭터들의 등장은 작품 내에서 원활하게 설명할 수 없는 작품 외적인 요소입니다. 전 그런점이 맘에 안들었다는 거고요. 하지만 이때까지만해도 그냥 특별 이벤트 취급하면 되지. 이렇게 생각하며 좋게 넘겼습니다.
하지만 제가 정말 화가난 건 이후에 등장한 에피소드 때문입니다. 바로 큐어 앙피니요.
큐어 앙피니 자체는, 그전까지 크라이아스사로 흑화할 것처럼 복선을 깔아뒀던 앙리가, 사고를 당하는 더 큰 절망속에서도, 무엇이든 될 수 있다는 작품의 메세지를 강조하듯 프리큐어가 됨으로써 그동안 깔아둔 복선에 반전을 선사하며, 메세지까지 전해주는 좋은 연출이었다고 볼 수는 있지만, 그건 제 기준으로는 절대 나와선 안되는 장면이었습니다.
여기서 맨 먼저 제가 프리큐어를 보는 이유로 돌아가 봅시다. 전 이 글을 시작하며 프리큐어 시리즈는 '여아들을 위한 작품'이라는 점이 좋아서 본다고 말하며 시작했습니다.
프리큐어 시리즈에서 프리큐어란, 여자아이들이 되고 싶어하고 닮고 싶어하고 감정이입을 하는 존재입니다. 그래서 프리큐어로 변신할 수 있는 변신기, 프리큐어들이 사용하는 무기 장난감을 가지고서 실제 프리큐어가 되는 놀이를 하는 것이고, 만드는 쪽에서도 그렇게 여아들이 좋아해주며, 따라하기를 바라며 만들기에 프리큐어는 여아들을 위한 애니라는 말을 하는 것입니다.
그럼 여기서 여아들을 위한다는 말뜻은 무엇일까요. 제가 생각하는 '무언가를 위한다'라는 말은, '그 외 다른 것은 배제한다'는 의미라고 생각합니다. 널 위해 준비했어. 라는 선물이 있다면, 그 선물은 오롯이 받을 그 사람이 쓸 것만 상정하고 준비한 물건이라는 뜻이라고 생각합니다. 그 선물에 '혹시 다른사람이 쓸 일이 있을지도 모르니까 네가 안 쓰는 기능도 일단 넣어놨어.'이렇게 덧붙인다면, 그 순간 이미 그 선물은 오롯이 '널 위한 선물'이 아니게 된다는 말입니다.
허그프리는 아이들에게 '뭐든지 할 수 있어, 뭐든지 될 수 있어'라는 메세지를 외치는 것까진 좋았지만, 뭐든지 될 수 있으니까, 남자도 프리큐어가 될 수 있어. 라는 말까지 해버렸습니다. 여아들을 위한 작품이라면서, 메세지의 주어에 여아가 아닌 남자를 들먹인겁니다. 큐어 앙피니가 외치는 남자도... 라는 메세지는, 주어가 여아들이 아닙니다. 여아들을 위한 작품이라면서 여아가 아닌 남자에게 메세지를 전하고 있는 겁니다. 이건 핀트가 잘못되도 한참 잘못 됐어요.
비유를 하자면, 여자아이들이 프리큐어 장난감을 가지고 놀며 재밌게 프리큐어 놀이를 하고 있는데, 남자애가 달려와서 뭐든지 할 수 있고, 뭐든지 될 수 있잖아, 나도 프리큐어 할래. 이러면서 끼어드는 꼴입니다. 여아들이 감정이입을 하는 대상인 '프리큐어'에 남자가 포함되는 순간, 더이상 프리큐어는 오롯이 여아를 위한 작품이 아니게 됩니다.
허그프리는 그 전부터도 미묘하게 성평등을 이야기하는 듯한 묘사가 많았습니다. 성평등 좋죠. 외치지 말라는게 아닙니다. 전 지금 메세지가 옳으냐 그르냐에 대한 이야기가 아니라, 낄끼빠빠. 말할 대상과 장소를 구분하라는 말입니다. 현실적으로 '프리큐어'는 여아들이 동경하고 되고 싶어하는 존재라고 했을 때, 여기에 남자가 들어갈 공간은 없습니다. 왜냐하면 프리큐어는 오직 여아들을 위해 만들어지고, 소비되는 컨텐츠이기 때문입니다. 성인팬, 남자팬 물론 있지요. 하지만 그들을 위해 만드는 작품인건 아닙니다. 여아들을 위해 만든걸 그냥 어른들도 보는 것일 뿐이지요.
성평등을 외치면서 남남커플, 여여커플 같은 PC요소를 넣는건 상관없습니다. 여자도 남자를 지켜줄 수 있고, 남자라도 보호 받을 수 있어요. 여아들이 보는 프리큐어에 게이커플이 나와선 안된다 이런말을 하는게 아닙니다. 하든말든 상관없어요. 어른들이 보기에 게이커플, 레즈커플이라고 하는거지, 실제 여아들은 그런거 잘 모릅니다. 그냥 친구사이라고만 받아들일테죠. 프리큐어에 어떤 성평등적 메세지를 넣어도 상관은 없으나, 절대 침범해선 안되는 영역이 바로 프리큐어 그 자체입니다.
프리큐어는 작품의 주어인 여자아이를 상징하는 존재입니다. 여기에 남자가 끼면 안됩니다. 왜! 여자아이들을 위한 작품이니까! 여자아이들 보라고 만드는 프리큐어니까!
여아들을 위해, 여아들보라고 만드는 작품에, 남자에게 외치는 메세지를 넣을 이유도, 필요도 없다는 말입니다. 여자를 위해 만든 여성화장실에, 성평등을 외치며 남자 소변기를 설치한다고 해봅시다. 여성화장실에 남성소변기가 설치되는 그 순간. 더이상 그 화장실은 '여성화장실'이 아니라 그냥 '공용화장실'이 될뿐입니다.
다시 말하지만 무언가를 위한다는건, 원래 배타적인겁니다. 다른건 포기한단 말이에요. 여아를 위한 작품이라면 오직 여아만을 보고 말하면 되지, 다른 주어를 끼워서는 안됩니다. 다른 주어가 끼어드는 순간, 더이상 여아를 위한다는게 아니에요.
큐어 앙피니때 너무너무 화가 났는데, 제작진은 한 술 더떠 최종결전에선 아예 모든 사람을 프리큐어로 만드는 만행을 저지릅니다. 아깐 여자애들 노는데 남자애가 난입하더니, 이젠 아줌마 아저씨도 프리큐어 시켜달라고 난입하고 있어요.
이건 그냥 모든 사람에게 뭐든지 할 수있고 뭐든지 될 수 있으니까 열심히 살아라! 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말 자체는 좋네요. 모든 사람을 응원을 하는 작품이라니 스케일도 크고 좋아요. 그 부분을 보면서 감동한 어른이들이 많을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어른이들을 직접적으로 응원해주는 작품이라니, 지금까지 어른이라서, 남자라서 될 수 없다고 생각했던 프리큐어가 될수 있다고 말해주다니 정말 멋진 작품이구나 하고 받아들일 수도 있겠지요.
네 말만 놓고 보면 정말 좋은 말입니다. 주어에서 정작 여아들이 밀려나버린 것만 빼면요.
뭐든지 할 수 있어, 뭐든지 될 수 있어는 작품 내적인 메세지입니다. 하지만 여기에서 한발 더 나간 성평등. 남자도 아줌마도, 아저씨도 누구든 프리큐어가 될 수 있다는 메세지는 작품 외적인 메세지입니다. 그래서 주어가 작품내의 대상인 여아들이 아닌 작품 외적인 남자와 어른들을 향하고 있는 거지요.
바로 이 점이 너무너무 화가 난다는 말입니다. 왜 프리큐어를 여아들을 위해서가 아닌, 다른 주체를 향한 메세지를 끼워넣어 만드냔 말입니다.
이렇게 제작진이 여아들을 뒷전으로 본다는 느낌을 받은 순간, 전 허그프리를 온전히 좋아할수가 없게 되었습니다. 이런 제 불만은 마지막회에서 완전 폭발해버리게 되었는데요. 커뮤니티에서도 꽤나 화제가 되었던 바로 그 씬. 하나의 출산 장면 때문입니다.
프리큐어가 결혼할 수 있어요. 임신도 할 수 있고, 애도 낳을 수 있습니다. 지금은 프리큐어 보며 노는 아이들이지만 언젠가는 커서 결혼도 하고, 애도 낳겠지요. 그건 너무너무 자연스러운 자연의 섭리니까 그 점을 비판하는게 아닙니다. 제가 비판 하고자하는 포인트는 왜 굳이 분만실까지 카메라를 집어 넣었냐 하는 점입니다.
의도? 좋을수 있지요. 어머니는 이렇게 위대하다. 이런 고통을 견디고 아이를 낳는다. 어머니들은 자신의 아이를 이렇게나 사랑한다. 메세지적으로 해석하면 뭐 얼마든지 좋은 의미로 해석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전 지금 의도가 잘못됐다는 말을 하는게 아닙니다. 제가 하고자 하는 말은, 그걸 꼭 굳이 여아들에게 보여줬어야만 했냐라는 말입니다.
사실을 보여주는 것 뿐인데 뭐가 나쁘냐는 의견이 나올 수도 있겠지요. 그럼 상황을 좀 바꿔보겠습니다. 프리큐어의 대상 연령인 미취학 여아들이 만약 '산타 할아버지는 없나요?'라는 질문을 했다고 해 봅시다. 당연히 없다는거 어른들은 다 알고 있습니다. 그렇다고 그런 질문을 하는 아이에게 '응, 없어'라고 사실대로 말해줄 수 있겠습니까? 적어도 전 못합니다.
아이에게는 사실을 전달하는 것보다 더 중요하게 지켜줘야 할 것이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하나가 엄마가 되는건 좋습니다. 허그땅과 실제 모녀였다는 전개도 괜찮아요. 하지만 그렇다고 낳는 장면까지 넣을 필요는 없었다고 생각합니다. 예전에도 아기를 낳는 것에 관련된 프리큐어 에피소드는 종종 있어 왔습니다. 하트캐치에서 언니가 되는 아이 에피소드라던가, 스마일에서 나오의 동생이 태어나는 에피소드들요.
하지만 그런 에피소드에서도 분만실까지 들어가진 않았습니다. 그냥 아이가 태어난 결과만 보여주면 충분하거든요. 허그땅이 하나의 아이라는걸 보여주고 싶었으면, 마찬가지로 막 태어난 허그땅을 안고 하나가 이름을 지어주는 씬만 보여주거나, 아예 몇년더 후 씩씩하게 학교에서 돌아오는 허그미를 하나가 다정하게 집에서 맞아준다거나 하는 식으로 얼마든지 유연하게 보여줄 수 있습니다. 하나의 남편이 조지인게 99%확실하긴 하지만, 의도적으로 제작진이 일부러 안보여준 것 처럼, 분만실 씬도 얼마든지 암시로 처리할 수 있습니다.
굳이 애는 이렇게 태어나는 거다. 라며 고통스러워하는 하나를 보여줄 필요까진 없다고요. 그리고 그 장면은 저 개인적으로도 굉장히 큰 트라우마를 남겼습니다.
공식의 발언은 매우 중요합니다. 실존하지 않는 창작물의 경우, 작품속에서의 묘사, 공식제작자의 발언이 바로 진실이 되기 때문입니다. 최근 꽤나 떠들썩했었던 오버워치의 예를 들면, '저기 솔저가 전우 사진 보는 눈빛이 너무 애틋하던데, 사실 솔저 게이 아니냐?', '그러넼, 솔저 게이였넼' 작품안에서 나오는 묘사 하나를 확대해석해서 이렇게 드립을 친다고 했을때, 솔저가 게이가 아니라고 생각할 때는 얼마든지 웃으면서 드립으로 생각하고 농담으로 받아넘길 수가 있습니다. 하지만 블리자드에서 '솔저는 게이가 맞습니다.'라고 발표를 해버렸습니다. 그럼 더이상 저 드립은 드립이 아니게 됩니다.
무슨말이냐면, 공식의 태도에 따라 팬들의 운신의 폭이 제한된다는 말입니다. 공식의 한마디로 인해 그 전까진 농담이던게 농담이 아니게 될 수 있습니다. 프리큐어 시리즈는 여아들이 보는 거라지만 실상 어른팬들도 상당히 많고, 그런 어른들을 대상으로 묘사하기조차 민망한 책이나 그림들도 많이 2차 생산되고 소비되고 있습니다.
이전 시리즈까지는 그런 책을 봐도 전혀 아무렇지 않았습니다. 아이들 보는걸 그렇게 묘사하냐며 화를 내지도 않았습니다. 어차피 그런 책들은 아이들 보라고 만드는 것도 아니고, 어른들 대상으로 어른들 소비하라고 만드는데 내용이야 뭐 아무래도 상관없습니다.
그런 책에서 프리큐어들이 아무리 정액에 중독된 암퇘지로 그려진다고 해도, 공식적인 프리큐어는 전혀 그렇지 않으니까 마음속에서 선을 확실히 그을 수 있었습니다. 이건 2차 창작일뿐인데 뭐라 하든 뭔 상관이야. 이럴수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번 허그프리의 하나만큼은 제 속에서 그 경계선이 무너져버렸습니다. 임신해서 산달이 된 배. 분만실에서 고통스러워하는 모습... 이런걸 공식에서 직접 보여줘버렸습니다. 성인 팬층에서는 당연하다는듯 하나 임신을 소재로 하는 2차 창작물이 쏟아져나오는데... 이번만큼은 제 속에서 아니 공식의 하나는 그렇지 않으니까. 라고 선을 그을 수가 없습니다.
대학생 조지가 중학생인 하나를 건드리는 그림이라던가, 유부녀인 하나가 NTR로 허그미를 임신하는 그림이라던가... 온통 보기 싫은 그림들이 흘러넘치는데, 전같았으면 아무래도 상관없다 할 수 있었는데 이번엔 전혀 그렇게 되지 않습니다. 물론 하나는 순수하게 사랑을 하고 그 결실로서 허그미를 낳은거겠지만, 그 장면을 봐버린 이상, 의식적으로 그 선이 확실히 그어지지 않는다는 말입니다.
그냥 어느정도 성장한 허그미와 행복하게 살고 있는 하나를 에필로그로 보여주는 정도였다면 이런 생각이 전혀 안들었을겁니다. 안 찾아보면되지 자기가 찾아보고 왜 난리냐고 말이 나올수도 있겠지만, 보려고 억지로 찾지 않아도 돌아다니다보면 자연스럽게 보이니까 미치겠다는거지요.
사실을 알고 있는 것과 실제로 보는 것은 어마어마한 차이입니다. 총에 맞으면 사람이 죽는다. 이런 사실은 누구든 알고 있지만 그렇다고 실제로 눈앞에서 사람이 총맞아 죽는걸 본다면, 아무리 알고 있다고 해도 정신적 충격을 안 받기는 힘들 것입니다.
아이들을 대상으로하는 캐릭터 쇼의 마스코트 인형들, 그 안에 사람이 들어가서 연기하는거라는거, 누구나 다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래도 굳이 그 안에 누가 들어가 있는지 인형탈을 벗어서 보여주진 않습니다. 그걸 벗어버리는 순간, 더 이상 그 캐릭터 인형은 캐릭터가 아니라, 그 사람 얼굴이 떠올라 버리기 때문이지요.
아이들을 위한 테마파크를 지향하는 디즈니랜드에서는 아예 스크린 영상에 애니메이션 미키가 나오는 타이밍에는 퍼레이드 하던 미키 마우스의 캐릭터 인형도 밖으로 나오지 않는다고 합니다. 아이들에게 미키가 둘이라는 혼란을 주지 않기 위해서라는 이유로요.
진짜 아이들을 위한다는건 바로 이런겁니다. 다른 무엇보다 아이들을 제일 우선으로 생각하고, 아이들의 동심을 지켜주는 방법을 고민하고 실행하는 것. 아이들에겐 좀 편협해도 괜찮아요. 아이가 좀 못생겼어도 우리 왕자님, 공주님해주고, 때로는 산타는 있단다. 라고 거짓말도 해줘도 괜찮습니다. 아이에게는 사실의 전달보다 더 중요한게 있다고 믿기 때문입니다.
길게 떠들었지만 이번 허그프리는 여아들을 위한 프리큐어 시리즈에서 정작 여아들을 뒷전으로 돌리고 제작진이 작품 외적으로 하고 싶은 말을 더 강조한 시리즈 입니다.
한마디로 평가하자면 과유불급.
아이들에게 뭐든지 할 수 있어 응원만 해주면 충분한데 거기다가 괜히 남자도, 어른도 프리큐어가 될 수 있다며 덧붙일 필요가 없는 말을 덧붙이고, 아기가 태어나는 분만실까지 카메라를 넣어서 굳이 아이들에게 보여줄 필요가 없는 장면까지 고스란히 집어넣는 행위가, 정말 여아들을 최우선으로 생각해서 넣은 장면들일까요? 제작진이 자기들 고집으로 억지로 집어넣은 장면인게 아니라요?
제눈에는 그런 고집이 절대 좋게 보이지 않습니다. 작품적으로 허그프리는 그럭저럭 잘 만든 작품일 순 있으나, 전 절대 좋은 평을 내릴수도, 즐겁게 감상할 수도 없었던 작품입니다.
차라리 작품적으로는 허술했지만, 여아들에게 친구들과 사이좋게 즐겁게 놀라고 말을 해준 마호프리가, 꿈을 가지고 열심히 노력하라는 메세지를 주었던 고프프리가, 비록 꿈은 없어도 좋아하는걸 열심히 꾸준히 하는 것만으로도 잘하고 있는거라는 격려를 해주었던 키라프리가 훨씬, 훨씬 좋은 작품이라고 생각합니다.
뭐 별 시답잖은 이유로 싫어하네. 라는 생각을 하실분 있을것으로 믿습니다. 이런 이야기를 해보죠. 키라프리는 제작진이 대놓고 육탄전을 배제하겠다고 선언했었습니다. 그래서 아니 프리큐어에서 육탄전을 뺀다는게 말이돼? 라는 반응도 있었지요. 어떤 팬이 육탄전이 안나오는 프리큐어는 프리큐어가 아니야.라고 하며 키라프리를 싫어한다고 해봅시다. 아니 겨우 그걸로 싫어해? 할수도 있지만, 당사자가 프리큐어는 초대부터 육탄전이 아이덴티티였다. 그걸 버린 키라프리는 프리큐어가 아니다. 고 한다면, 나름대로 주장을 이해할 순 있다고 생각합니다.
내가 동의는 못하더라도 그 사람이 싫어하는 이유로는 충분하다고 생각할 수 있지 않습니까? 무언가를 좋아하고 싫어하는건 철저하게 그 사람 개인의 성향인거니까요.
저에게 프리큐어 시리즈는 육탄전이 아이덴티티이기는 하지만, 그보다 먼저, 항상 여아들을 위해 만들어온 시리즈라는게 더 큰 대전제입니다. 이 대전재도 육탄전과 마찬가지로 초대부터 계속 이어져온 프리큐어 시리즈의 또다른 아이덴티티예요. 그래서 육탄전을 버린 키라프리는 그래도 좋아할 수 있지만, 제일 중요한 여아들을 뒷전으로 돌려버린 허그프리는 좋아할 수가 없습니다. 앙리가 프리큐어로 변신할때, 전세계인이 프리큐어가 될때, 하나가 분만실에서 비명지를때, '우와 이런장면이 나와도 정말 괜찮아?' 라는 생각이 한순간이라도 들었다면, 제가 말한 배신감의 이유를 조금이나마 느끼신거라 생각합니다.
여아애니면서 정작 여아에 대한 존중보다는 제작진이 자기들 하고 싶은 말을 더 크게 외쳤던 허그프리. 지금까지 보아온 프리큐어 시리즈 중 단연 최악이었습니다.
후... 쓰다보니 너무 길어졌습니다. 원래대로라면 이 감상도 신작 스타 트윙클 프리큐어가 시작하고, 그 1화를 본 다음, 허그프리 총평과 트윙클 프리큐어의 1화 감상을 같이 썼겠지만, 허그프리가 프리큐어 시리즈의 근간을 흔드는 짓을 해버리는 바람에, 제 마음속에서 전체적으로 프리큐어 시리즈 자체에 현자타임이 와버렸습니다.
허그프리를 생각하면 화가 나고 열받아서, 순수한 마음으로 트윙클 프리큐어를 즐길수가 없을 것 같았습니다. 이럴때는 프리큐어 IP자체에서 좀 떨어져 진정하는 것밖에는 해결책이 없습니다. 그래서 아무래도 당분간 스타 트윙클 프리큐어의 감상을 쓰긴 힘들 것 같아 아직 방영하기 전인 지금 써봅니다.
별 것도 아닌걸로 과몰입한다고 생각할 수도 있겠습니다만, 프리큐어 시리즈는 근 몇년간 제가 다른 취미생활을 죄다 접어가면서 유일하게 몰두했던 시리즈입니다. 그래서 그 배신감이 여간 크지 않습니다. 다른 사람이 보기엔 별거 아닐지 몰라도, 저에게는 꽤 중요한 문제입니다. 욕을 하셔도 상관은 없지만, 이렇게라도 토해내지 않으면 스스로 제정신을 유지하기 힘들정도로 며칠간 너무너무 힘들었기 때문에 이런형식으로 글을 남겨봅니다.
ps. 전 본문에서 허그프리가 잘만들었니 못만들었니 작품 내적인 평가는 전혀 하지 않았습니다. 그렇기에 허그프리의 잘 만든점, 장점을 아무리 이야기하신다고 해도 제 말과는 완전 핀트가 어긋난 다른 이야기가 될 뿐입니다. 전 허그프리가 못만들어서 싫어한다는게 아닙니다. 작품의 장단점 이전에, 제작진이 여아를 존중하지 않는 태도가 맘에 안든다는 것이니까요. 그냥 이런 미친놈도 있구나. 생각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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